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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례식은 누구를 위한 의식인가?

    출처 : Pixabay

    1000만원 훌쩍 넘는 장례비에…“無빈소 장례식 해요”

    최근 주위에서 장례 문화가 바뀌는 모습이 종종 보이고 있다.
    위의 사례처럼 빈소가 없는 장례가 늘어나기도 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모습이 다양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장례의 정석

    현 시점 기준, 정석적인 3일장 절차를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1일차, 고인의 임종 후 장례식장을 찾아 빈소를 차린다.

    2일차, 조문객을 맞으며 입관식을 치른다.

    3일차, 발인 이후 화장이나 매장을 한다.

    어느 정도 절차를 알고 있다면 그나마 수월하게 치를 수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상주가 되는 경험이 일생에 몇 번 없기 때문에 정신없이 일을 쳐내다 보면 3일이 끝나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례화된 장례 절차의 문제

    이미 장례 절차가 어느정도 규격화 되어있다 보니 상주나 조문객들은 으레 그러려니 하면서 장례를 치르고, 조문을 한다.

    다만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사회 속에서 이러한 장례식 문화가 지속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몇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1. 비용 문제
      상주에게는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문제다.
      2015년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총 장사비용(장례식 및 화장/매장)은 약 1,400만원으로 조사됐다.
      이미 10년도 더 지난 조사결과이니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평균적으로 2,000만원 정도의 예산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조의금으로 장례 비용을 충당할 수 있으면 다행이겠지만, 가족 구성원도 줄어들고 사회적 관계도 느슨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장례 비용을 온전히 조의금으로 충당할 수 있는 집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현 장례 풍습을 유지한다면 결국 상주는 고인을 잃은 슬픔에 더해 금전적 부채까지 떠안게 되는 상황이 계속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2. 환경 문제
      현 시점에서 일회용품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몇 안되는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장례식장일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으나, “그럼 상주보고 설거지까지 하란 말이냐”라는 반론으로 일회용품 사용을 당연스럽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에서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는 있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아직 불명확하다.

    장례의 본질은 무엇인가?

    기존 장례식 절차라는 틀 안에서 생각하면 위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이 쯤에서 우리는 장례식을 왜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해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당연히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고있는 의식들을 보면 장례식이 고인을 위한 행사라기 보다는 상주와 조문객들을 위한 행사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가족을 잃은 상주를 위로하는 일도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 쪽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고인에 대한 추모는 다소 조심스러운 절 두 번으로 마무리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당신의 죽음은 어떤 모습이고 싶나요?

    죽음은 필연적이다.

    누구나 예외 없이 마주할 삶의 마지막 모습에서 나는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왔으면 하는지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남은 사람들에게

    “나는 즐겁게 살다 갔으니, 당신들도 즐겁게 살다 가세요.”

    라는 메세지를 남기고 싶다.

    현재의 장례식 풍습대로 내 마지막을 맞이한다면 아마 조문객들에게 그런 메세지는 남기지 못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현재의 정례화된 장례식 절차는 변화할 필요가 있다.

    어떤 식으로 변화해야 할 지에 대한 답은 딱히 정해져있지는 않지만 최근 흥미롭게 봤던 아티클을 인용하면서 마무리 하고자 한다.

  • 죽은 자를 위한 공간

    출처 :pixabay

    죽은 자는 어디로 가는가?

    2026년 현재, 통상적으로 사람이 죽게 되면
    매장 혹은 화장 둘 중 하나의 방식으로
    고인을 모시게 된다.

    현재는 화장이 가장 많은 편인데,
    화장이 보편화된 시기도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1993년 화장률은 19.1%에 불과했지만
    2021년에는 90.8%가 화장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드라마틱한 변화는
    1. 토지 면적의 한계
    2. 관리 비용의 문제
    두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영화 「파묘」에서도 나오지만
    이미 터 좋은 땅들은 죽은 자들로 가득 찬지 오래다.

    2025년 보건복지부_묘지 현황 통계에 따르면
    전국 묘지의 묘역면적은 51,371,865㎡
    총 매장능력은 2,534,895위 정도 되지만
    이마저도 대부분 가득 차서 신규 분양을 못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매장에서 화장으로의 전환은
    사람들의 인식 변화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달리 고인을 모실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화장의 상황은 어떨까?

    아직까진 화장 후 봉안당에 안치시키는 방식이 가장 보편적인데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 방식도 한계가 곧 올 것이다.

    인구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에서
    봉안당을 가득 채우는 일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다.

    어디서부터 문제인 것일까?

    어찌 보면 지속 가능하지 않은 이 장례 문화는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마 “존재에 대한 애착”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 육신과 생명은 끝나더라도
    나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마음,

    기억하고 싶은 누군가를
    물리적인 공간을 통해 구현하고 싶은 마음,

    누구라도 그런 애착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앞으로 이 땅에 살아갈 사람들에게
    묘지와 봉안당으로 가득 찬 토지를 물려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는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은 삶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삶을 얻게 되는 시점에도 아무 것도 없이 태어난 만큼
    죽을 때도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마침 산분장이라는 제도가 법제화 되어
    이제는 바다나 산분장지에 유골을 뿌리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죽은 자를 고정된 장소에 안치하지 않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자연스러운 시대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우리는 한 평 남짓의 땅 속이나
    택배박스보다 작은 유골함 속이 아닌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 하데스와 함께 죽음을

    사진: <a href="https://unsplash.com/ko/%EC%82%AC%EC%A7%84/%EA%B0%88%EC%83%89%EA%B3%BC-%ED%9A%8C%EC%83%89-%EB%AC%98%EB%B9%84-ekTORB70WI4?utm_source=unsplash&utm_medium=referral&utm_content=creditCopyText">Unsplash</a>의<a href="https://unsplash.com/ko/@moino007?utm_source=unsplash&utm_medium=referral&utm_content=creditCopyText">DDP</a>
    출처 : Unsplash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게 된 현실에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죽음을 이야기하게 된 Hades 입니다.

    피하고 싶은 죽음이 아닌
    인생이라는 여행의 종착역으로서의 죽음이 될 수 있도록
    죽음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그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라는 인식을 마음 한 구석에 지니고 있다면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조금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달갑지 않은 것이 죽음이겠지만,
    그 또한 인생의 한 부분이니
    삶을 즐기는 자는 죽음도 기쁘게 맞이하지 않을까요?

    하데스를 웃으며 마주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가면서 글도 꾸준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