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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청년들은 왜 출산을 안할까?

    시시포스의 형벌을 거부하는 이타적 결단

    출처 : 나무위키

    시시포스의 형벌 : 무의미의 영원

    시시포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인물로, 코린토스의 왕이다.

    영리하고 잔꾀가 많았던 그는 신들을 자주 기만했는데,
    여러 차례 신들을 농락한 죄로 시시포스는 산 정상으로 바위를 밀어올리는 특이한 형벌을 받게 된다.

    정상으로 바위를 밀어올리면, 바위는 아래로 굴러떨어지기 때문에
    시시포스는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 바위를 밀어올려야 한다.

    시시포스의 형벌이 무서운 점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① 산 정상에 올려놓은 바위가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바위를 밀어올려야 한다는 것. “결과의 무의미함”이 첫 번째 이유다.

    ② 이 형벌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 “영원한 반복”이 두 번째 이유다.

    이 형벌의 핵심은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구조 그 자체에 있다.

    우리는 이미 바위를 밀고 있다

    산 정상을 향해 바위를 밀어올리는 시시포스의 모습은 인간의 삶과 많이 닮아있는듯 하다.

    태어나서부터 학업, 취업, 결혼, 출산 등 어딘가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만 왜 가야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열심히 나아가더라도 그 끝은 필연적으로 죽음일테고, 그 이후 다음 세대가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출산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이지만,
    하데스의 시선에서 보면 출산은 바위를 밀어올리는 형벌을 양도하는 행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영원한 형벌을 거부하는 법

    우리는 흔히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세대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기적이다. 책임감이 없다. 희생정신이 없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저출산은 단순한 포기가 아닌 무의미한 삶의 굴레를 끊어내려는 적극적인 저항의 몸짓이다.

    출산을 하지 않는다면 형벌은 반복되지 못할 것이고,
    반복이 끊어지는 순간, 그 형벌은 더 이상 ‘영원한 것’이 아니게 된다.

    무의미한 형벌을 이겨내는 다른 방법

    20세기 프랑스 작가인 알베르 카뮈는 그의 책에서 시시포스를 ‘행복한 인간’이라고 표현한다.

    무의미함, 부조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운명을 마주하는 태도
    그것이 카뮈가 생각했던 실존적 태도였을 것이다.

    카뮈가 생활하던 80여년 전에도, 현재도 우리 삶은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고통스러움의 연속이다.

    이런 고통 한복판에서 피어나는 출산이라는 큰 결심의 씨앗은
    미래의 세상은 현재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피어날 것이라고 본다.